나는 통속물의 작법으로 구로이와 루이코와 뤼팽 시리즈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미남>이나 <마술사>, <황금가면>에는 그런 의도가 꽤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나는 통속물의 플롯은 서양 작품에서 차용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마술사>에도 그런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대형 시곗바늘에 목을 졸리는 이야기, 벽돌 벽 안에 사람을 생매장하는 이야기 등은 모두 에드거 앨런 포 단편의 착상을 통속화한 것이다. <마술사>는 동기의 부자연스러움이 눈에 띄지만, 플롯 상으로는 내 통속 장편 중에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벌레 蟲
<개조改造> 1929년 9월호와 10월호에 나누어 게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신청년>에 충蟲 글자를 크게 넣은 이색적인 표지로 예고했지만 실제로 발표한 것은 <개조>였다. 여기서 말하는 벌레는 구더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이다. 그것들이 시체를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부식해가는 공포가 이 소설의 중심이다. 살인을 하게 된 동기는 사랑을 고백했을 때 받은 비웃음, 그리고 자신도 그것에 동조하여 웃었다는 수치와 굴욕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내가 청년시절에 읽은 레오니드 안드레예프Leonid Andreyev의 단편 <나는 광인인가>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착안하게 된 것이다. ('저자후기'에서)
하쿠분칸의 《문예구락부》 1930년 1월호에서 12월호까지 연재했다. 내 작품 중 줄거리를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 있고, 거의 잊어버린 것이 있다. 《엽기의 말로》는 잊어버린 작품 중 한 편이다. 교정을 위해 30년 만에 통독해보니 이런 것을 쓴 적이 있었나 싶었고, 마치 나중에 쓴 글 같아서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까닭에 이 해설문은 좀 길어질 것 같다.
이 소설은 내 장편들 중에서도 기형아처럼 희한한 작품이다. 전편과 후편으로 나뉘어져 있는 데다가 두 개가 완전히 풍이 다른 이야기이다. 아마도 당시 《문예구락부》 편집장이 요코미조 세이시 군이었던 것 같은데, 요코미조 군에게 연재를 의뢰받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간에 제목을 바꿀 때에는 분명 요코미조 군과 상담을 하고 그의 권유로 작품의 풍조를 바꾼 기억이 난다.
“<고단구락부> 1934년 5월호부터 이듬해 5월호까지 연재했다.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여러 번 썼기에 이번에는 인간이 짐승으로 변하는 괴담을 쓰려했다. 역시 일관된 줄거리를 충분히 생각지 않고 써서 전체적으로 완결성이 부족한 감이 있다. 매달 집필하면서 어떤 달은 좀 흥미로운 이야기가 떠오르는가 하면 어떤 달은 너무 시시한 이야기만 떠올라 내 고질적인 문제가 노출되었다. 하지만 당시 오락 잡지들은 이런 유치한 읽을거리를 원했기 때문에 내 장편은 꽤 수요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