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아니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와글와글 치밀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렵게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내 그림자 안에서 맴돌고 있는 내 글이 익숙한 독백 같기만 했다. 이걸 소설이랄 수 있을까? 멈칫거릴 때마다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말해준 한참 전의 어떤 격려를 떠올렸다.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지닌 만큼의 이야기들을 그저 쓸 수밖에. 되지도 않을 허영이나 허명에 기웃대지 않는 우직함이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쓰기를 놓은 적은 없지만, 작가라는 명칭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놓지 않았기에 한 편 한 편 모을 수 있었다. 부끄러움은 남지만, 한 문장을 다듬기 위해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던 몰입의 시간은 큰 기쁨이었다.
말은 뱉고 나면 뒤끝이 편치 않은 적이 많다. 쓸데없는 언어로 내 비루함만 드러낸 것 같아 뒤척이기도 한다. 입을 닫고 글을 쓰는 데 더 열중하자고, 다짐해보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