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가 쪼아낸 소리가 숲을 가로질렀고
꽃은 서둘러 환해졌다.
앞산의 병풍바위는
제 몸속에 경전을 새기는지 여전히 묵언수행 중이다.
누구라서 저 오랜 경전 앞에서 경건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저 풍상의 날들을 화석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둥지를 수선하던 새
소나무가 퍼 올린 샛강에 목을 축이고
산은 그만큼 깊어졌다.
2023년 3월
거리의 풍경이 바뀌듯 사람들의 행보에도 가을이 묻어난다. 직립의 서정을 제멋대로 연출하며 노랗게 물든 나무에서 화석이 될 시간을 헤아려 본다. 연둣빛 작은 몸짓으로 봄을 불러들이며 거리를 환하게 밝히던 새순들이며 잎이 무성해지기도 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던 폭우에 부러진 가지 추스르며 이젠 은행나무만의 내력으로 가을을 익히고 있다.
그 거리를 걸으며 삶의 단서를 찾는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건 가슴에 담아야 할 사연이 많기 때문이며 노란 현기증에 발목이 잡히는 건 그만큼 사랑했다는 증거다. 유리문 안으로 몰려드는 햇살과 푸른 잡담을 섞어 마시던 커피와 포장마차에서 굽던 전어 그리고 통기타와 저음의 노래가 어울리는 그런 삶을 열망했다.
인생은 썰물과 밀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달의 날짜를 누가 더 잘 읽어내느냐가 삶이 어디에 놓일지 결정된다는 흰소리를 지렛대처럼 여겼는지도 모른다. 시절들이란 고단하다. 고단함을 단속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볼륨 높여 음악을 듣고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사이에도 푸른 것들을 반납한 나무는 뿌리로 깊어질 것이고 나는 또 다른 무엇을 하기 위해 기웃거릴 것이다.
구름이 옮겨가는 자리로 바람은 이동할 것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기억의 층들을 캐내고 또 단속하고 그렇게 계절을 실종시키며 삶의 순간순간을 지켜갈 것이다.
판도라 상자를 연다.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꽁꽁 숨겨두었던 상자를 열어 세상의 빛을 쪼이기로 했다. 살아온 흔적들을 세상에 던지면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도 있지만 용기를 내본다.
부끄러운 이 글들은 젊은 날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록이며 내 삶에 동행인 그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더러는 즐겁고 더러는 눈물짓게 하지만 반딧불이 잡아 어둠 밝히며 밤이슬에 젖도록 수다 떨던 그 시절을 소환해본다.
태어나 30년은 부모님께 의지해 살았고 또 30년은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살았으니 남은 30년은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다독이며 오늘을 기록한다.
2021년 10월
한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