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독학할 때부터 시 짓기에 앞서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 시를 지어야만 하는가’라는 자문과, 그에 따른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그 자문에 확실 명쾌한 자답을 얻지 못하고, 명확한 목적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을 시에는 시를 짓지 않았다. 아울러, 나의 시 짓기는 절대로 시류와 영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을 아파하며, 세상에 희망을 심기 위한, 나만의 시 짓기를 완성하자고 다짐했다. 어쩌면 생을 마칠 때까지 그 다짐대로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시 짓기는 항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현실의 불평등과 불의, 부조리함 등을 끌어안아 집요하게 발언해야 한다. 이는 시인과 시의 의무이자 목적이다.
시는 결코,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틀에 박힌 문학 공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신념으로 또 졸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곳곳에 대규모 공단이 조성됐고 이에 따라 그 주변에 공단 마을이 급조성되었습니다. 땅 주인들은 그 흐름을 이용해 방 한 칸에 부엌 하나의 공간을 10여 세대씩 2층으로 벌집처럼 지어 올려 세를 놓았습니다. 한숨처럼 늘어선 초기 공단 마을 그 벌집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중년 어른이 되었습니다. 4차 산업으로 이행되어 가는 이 시점까지 그들을 포함, 아직도 공단 마을에서 극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수의 공단 마을 어린이들 정서를 담은 동시집이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이어서 동시 전문 시인은 아니지만 공단 마을 아이들에 대한 동시집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우리 문학사는 물론 역사적 관점에서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입니다.
우리 사회 소수의 공단 마을 극빈 어린이들을 다룬 것이기에 다수의 어린이들로부터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하지만 문학은 반드시 다수의 공감만을 덕목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감은 체험에서 얻는 것이고 체험에는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이 있습니다. 공단 마을의 열악한 삶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다수의 어린이들이 이 동시집을 통해 충분히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아직도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소수의 동무들 삶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전통적 농경사회였던 우리 사회는 1960년대 말 전국에 산업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왔다. 이에 편승해 자본화도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4차 산업으로 이행되어 가는 현재 그 상황은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의 본질이 최우선시되어야 할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자본이 그 자리를 침략해 차지해 버렸다.
이제 우리의 문학은 산업화와 자본으로부터 점령당한 인간의 삶의 본질을 찾아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우리 사회를 진정한 인간의 삶을 위한 장으로 구축해가야 한다.
그러한 노정으로 임한 이번 졸시 작업을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을 인간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연과 생물, 무생물 등 우주 종교적 차원에서 찾고자 한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쓸 만한 글 하나 남기고자 작심했던 어린 시절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규모 영세 공장에 몸담으면서 접어야 했던 나에게 성경을 통해 예수가 다가왔다. 내 나이, 공교롭게도 그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진 나이와 같은 33세가 되던 해였다.
직업병으로 몸과 맘이 만신창이가 된 나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되어 두 가지의 특별한 가르침을 주었다. 하나의 가르침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라”라는 것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의 가르침은 “사랑하라”라는 것이었다. 그 가르침에 따라 무에서 유를 만들 듯 독학을 했으며, 사랑하듯 시를 썼다.
예수는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핍박을 받고 있던, 낮은 자와 힘없는 자와 가난한 자와 병든 자 등 민중과 항상 동행하며 호흡하고 그들을 사랑했다. 내 시도 항상 노동자 등 민중의 삶과 동행하며 그들의 삶을 사랑하길, 그리하여 어떠한 형태의 몸이 되고 어떠한 형태의 옷을 입든 정신과 가슴만은 반드시 그들과 함께 호흡하길 기원하며 시를 써왔다.
유사 이래 세상은 단 한 번도 노동자 등 민중에게 빛이 된 적이 없지만, 민중은 언제나 세상의 빛이 되어 왔다. 노동자 등 민중과 함께 호흡해 가고자 하는 내 시들에게 세상은 단 한 번도 빛이 되지 않을 것이지만, 미약하게라도 내 시가 언제나 세상의 빛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이 법제화되어 합법화된 이후로 대기업 노동조합이 주도해왔다. 그 결과 노동자의 계층화가 형성되고 심화되는 것에 일정 부분 일조했다. 대기업 노조는 현재 ‘귀족 노동자’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조직과 경제적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상류 노동자가 되었다.
그 ‘귀족’을 세습하고 싶을 정도로 권력도 강해져서, 신규 채용 시 일정 비율을 정해 자신들의 자녀를 채용해줄 것을 자본과의 협상 조건으로 내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현상이지만, 참으로 스스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들은 거대한 조직의 힘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자본 못지않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심화되어가고 있는 중소기업, 하청, 비정규직, 특수고용, 일용직 등의 중·하류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위해서는 투쟁하지만 자신들보다 더 못한 이들을 위해서는 투쟁하지 않는다. 어느 대기업 노조가 자신의 사업주 자본을 대상으로 전개한 투쟁으로 그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10퍼센트 포인트 올랐다고 하여 어느 공단 후 미진 중·소 사업장의 중·하류 노동자의 임금도 덩달아 같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도 나보다 더 못한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에게 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진정한 ‘운동’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 또는 공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노동운동도 그리 할 때 ‘노동’에 ‘운동’이란 용어를 떳떳하게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자신들만을 위해 하는 것에 감히 ‘운동’ ‘투쟁’이란 용어조차 사용할 수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나보다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불평등’이 ‘평등’으로 가는, 그러한 노동운동에 정진하여 자본에 맞서 투쟁할 때 이 사회의 병든 노동이 점차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후대에게 건강한 노동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2019년에 펴낸 동시집 『공단 마을 아이들』에 이어 이번에 『살고 싶은 우리 집』을 펴내게 되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공단 마을 아이들』엔 공단 마을에서 살고 있는 화자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아냈지만, 『살고 싶은 우리 집』은 화자의 시야를 좀 더 넓혀 공단마을에서 살고 있는 화자의 이웃과 동무, 주변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았습니다.
이로써 생전에 꼭 펴내고 싶었던 공단 마을 어린이들에 대한 동시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기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동시집이 열악한 환경에서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희망과 용기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빈부를 초월해서 서로 돕고 살펴 가며 아름답게 더불어 살아가는 길잡이가 되길 기원합니다.
아프지 말라.
세상이 좀 더 인간답고 아름다워지려면 노동자 민중이 아프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아팠던 그들은 현재도 아프다.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아플 것이다. 그들이 아파하는 한 어쭙잖은 내 시 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시를 써온 지 어언 30년이 되었다. 그간 묶어낸 시집들의 시 중에서 시화에 어울릴 만한 시 53편을 골라 시화집으로 묶는다. 박일환 시인과 이설야 시인이 시편들을 고르는 수고를 해주었다. 그 시편들과 내 스스로 고른 몇 편을 함께 묶는다.
여기엔 소규모 공장에서 노동하며 틈틈이 포장지 파지 위에, 혹은 야근 후 단칸방에 엎드려 원고지에 꾹꾹 눌러 새긴 초기 시편들이 마모되어 폐기처분 당한 기계처럼, 해고당해 스러진 노동(자)처럼 누워 있다. 또한 엄혹한 투병기에 외로이 홀로 남모르게 가슴에 새긴 시편들이 직업병처럼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재생된 몸으로 해고 노동자 복직 투쟁 현장과 광화문 촛불혁명 현장 등에서 노동자 민중과 연대하며 몸에 새긴 시편들이 동구 밖 이름 없는 돌멩이처럼 박혀 있다.
2016년 10월 18일 오전,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 규명과 관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첫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2016년 11월 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예술인 100여 명과 함께 적폐 ‘박근혜 정권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토요 촛불시위를 위한 캠핑촌 텐트를 설치했다. 이후 2017년 9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명박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대응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상응한 사법 처리를 촉구하기까지 촛불혁명에 동참했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한국민예총 이사장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고 박근혜 정권의 적폐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온 사무총장의 열악한 삶을 알게 되었다. 단체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 봉사하고 있는 그에게 미안했다.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를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시화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기금 마련이란 목적이 없었다면, 그간 이룬 시업을 감안할 때 내게 시화전은 가당치 않으며 합당치도 않다. 이러한 내 시화전에 화가, 판화가, 전각가, 서예가, 사진작가 등 52명의 시각예술가 벗님, 선생님들께서 동지애로 흔쾌히 동참해주었다.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한 56편의 시화 작업을 해주신 벗님, 선생님들과 시화집으로 묶어주신 한봉숙 푸른사상사 대표님께 무한한 고마움을 전한다.
벗님, 선생님들도 아프지 마시라.
17세. 너무 이른 나이에 육체노동자가 되어 노동을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노동자를 알게 되었고 노동을 알게 되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을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노동은 자본의 노예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았다. 이러한 노동판이 문학을 하도록, 나를 이끌었다.
공정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고 공의롭지 못한 그 노동판에서 어린 노동(자)는 너무 일찍 병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미처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자본의 병이 급습했다. 자본에 피를 팔고 뼈를 팔아 피골이 상접해 쓰러져도 한순간쯤은 성공하고 싶었다.
어린 노동(자)이었던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65세가 되었다. 그동안 살아온 것이 아니라 혹독한 자본에 맞서 견디어왔다.
견디어온 삶이기에 어느 한때 어느 시기를 살펴보아도 제대로 내세울 만한 성공한 삶이 한순간도 없다.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결과가 이를 막고 있다.
실패한 노동! 그 삶들을 호명해 기록한다.
독학으로 시 습작을 할 때부터 시 작업 외에 장편소설 한 편을 꼭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훈이 엉아』는 내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4년 전 초고를 써놓고 퇴고를 미루어 왔다. 그동안 노동문학관 건립과 노동예술제 개최 등 운영에 집중하느라 미루어 왔다.
주인공 훈이는 6 · 25전쟁 이후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석탄을 캐는 광부 아버지와 전쟁 중 두 자식을 잃은 충격으로 화병을 앓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훈이는 취학 전부터 어머니의 병시중과 동생들을 챙기는 등 집안일을 보살핀다.
극빈한 유소년 시절을 거쳐 소규모 영세 공장의 소년 노동자, 소년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훈이의 삶은 지난하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소년 시절 첫 직장에서 잘 곳이 없어 식당 대형 냉동고와 대형 증기 가마솥 안에 숨어 지냈으며, 전혀 예기치 못한 당혹스럽고 억울한 일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 되기도 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소년 가장이 된 훈이는 급기야 환경 유해 업종 영세 소규모 공장에서 진폐증에 걸린다.
이처럼 훈이는 지극히 최악의 부정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극히 긍정적인 삶으로 살아내었다. 그 삶의 이야기를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세상은 이를 데 없이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희망이 되길 바란다.
출판업계의 상황이 매우 어려운데도 기꺼이 출간해 준 시와에세이 출판사와 양문규 대표님을 비롯해 수고해 주신 관계자 모든 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2024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