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역사와 문학의 소통을 꾀했던 연구자들이 힘을 합하여 자그만 단행본을 수확할 수 있게 되어서 말이다. 이러한 노력이 하나씩 더 쌓일 때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아쉽기도 하다. 개별 논문들의 성취에 혹여 볼 만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단행본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드러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간의 토론 속에서 제기됐던 참가자들의 발랄한 아이디어와 묵직한 구상들이 후속 연구에서나마 꼭 실현되기를 바란다.
1994~1996년 2년 간의 모스크바 체류 기간 동안에 나는 기대 이상의 행운을 맛보았다. 문서보관소의 문서철 속에서 60-70년 전에 작성된 박헌영 관계 각종 기록들을 목도하는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 생생함이라, 그 감격이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박헌영뿐만이 아니었다. 분단체제 하에서는 남한에서는 빨갱이란 이름으로, 북한에서는 '종파분자'란 이유로 아무도 돌어보지 않던 사람들의 혁명운동 족적들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졌다. 이 자료들은 운동 전개 과정의 구비구비에 얽힌 그들의 고뇌와 격정, 생각과 숨결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