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세다.
다만 그 강인함이 자연과 약한 이들을 해치는 방향으로 너무 쏠려 있는 것이 문제였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돌아서 누군가를 위하고 자신에게 매몰찰 내치의 시기.
그렇지 않으면 지구보다 내가 먼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매사 종요로운 일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것일 텐데, 사람됨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제라도 주저 없이 사랑과 혁신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 때로는 낙망하고 때로는 기타줄을 퉁기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2024년 늦여름
문학의 자존심이 인류의 미래입니다.
말의 계단을 오르다 돌아보면 이젠 낯익은 향기.
그 속에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다, 꽃처럼 아름다운가를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가족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오늘도 나는 무릎에 힘을 주어야 하고,
그게 나의 미래입니다.
한 권의 시집이 아니라 한 권의 시를 묶고 싶었습니다.
여기 실린 시는 20여 년에 걸쳐 쓴 연시(戀詩)입니다. 그 덕에 한 시절 두루 걸치는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사랑이 다 담겨 있지요. 내 시에는 유난히 '돌아오길' 기다리는 말이 많습니다. 사랑은 기다림이며 기다림은 희망이며 희망은 내가 살아가는 힘의 전부입니다. 흐르는 바람처럼 당신의 한 마디가 지금은 떠나간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시야. 나가본 세상은 어땠니. 어린 네가 어느덧 성인이 되었구나. 너를 키운 세상의 팔 할은 무엇이었니. 외로움과 그리움의 차이는 헤아릴 수 있었니.
시야. 네가 자라는 동안 나는 늙었구나. 그러나 우리 같이 방황하고 우리 같이 철없이 웃던 기억은 말하지 않기로 하자. 어느덧 우리의 이름이 되고 몸이고 영혼이 되어 너는 거기에 나는 여기에 서 있으니.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시야. 우리 영원히 함께한다는 말도 하지 말자. 나는 너고 너는 나인 이유도 이젠 다들 알겠지.
시야. 가서 어른(아름)답게 살아라. 어른다운 게 무엇인지 나에게도 보여주렴. 나는 너로, 너는 내가 되어 다시 마음껏 세상을 다녀보렴. 내 마음 전해주렴. 되돌아온 네 모습, 큰 보탬 없이 떠나보내 서운하니 시야.
시야.
2023년 5월
박철
나의 최선이 남에게도 그렇게 좋은 의미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더욱 정성을 다해 시를 쓸 것이고 내게 유일한 생의 거처인 시쓰기가 생각보다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여섯번째 시집을 묶으면서 인간의 습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시집에서만큼은 밝고 새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노래하고 싶었으나 그게 잘 되지 않는바, 보다 깊고 개성 있는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더 정성을 기울이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를 읽고 독자들은 조금 쓸쓸하거나 우울해질지 모르겟다. 그러나 곧 비온 뒤의 화사한 청명을 믿으시고 예쁘게 봐주시기 바란다. 모든 이에게 축복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