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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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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한국형 노동회의소를 꿈꾸다>

이용득

1953년 경북 안동시 임동면의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의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당시 모두가 곤궁했던 한국의 경제 현실에서 제대로 학창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서 장학금에 의존해 동북중-경성고에서 공부하다가 중도 포기를 하고 잠시 공장에 취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다니던 성당 수녀님의 소개로 덕수상고에 진학해 졸업 후 곧바로 상업은행에 입사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뒤에는 독학으로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해 못 다한 학업을 이어갔다.
29세 때인 1982년 대졸과 고졸 간 호봉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대의원이 되면서 노동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렇게 시작된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은 상업은행 노조위원장, 금융노련 위원장, 금융산별노조 위원장을 거쳐 세 차례의 한국노총 위원장을 거치면서 예순 살 넘어까지 이어졌다.
상업은행 노조 시절, 국내 최초로 ‘육아휴직제도’를 도입(1985년)해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활성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금융노조 위원장 시절에는 IMF의 부당한 정책 개입에 항거한 두 차례의 파업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한국노총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전태일 노동자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 일로 두 차례에 걸쳐 투옥돼 1년 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2002년에는 은행이 앞장서서 토요일을 쉬는 ‘주5일 근무제’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해 일반기업으로 확산시키는 등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현장에서 끈질긴 투쟁을 이어온 실천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2004년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뒤에는 외자유치를 위해 해외 기업설명회(IR)에 함께 하기도 하며 노동운동의 대중성 확보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사회개혁적 조합주의’를 주창하면서 중앙노사관계 구축과 경제 분야의 노사간 사회적 대화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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