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 내가 막 『공주의 죽음』 한국어판 서문을 쓰려고 했을 때 뉴스나 신문은 한국 대선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아깝다! 우리나라가 먼저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젠더 문제에 관심이 많던 한 학생이 올 연초에 있었던 타이완 대선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여성 지도자의 출현이 주는 의미는 국내 정책의 구체적 변화를 가져올 것에 대한 기대보다는 각 나라의 국제적 브랜드 파워 순위를 매기는 상징적 기준으로 더 중요한 것이 되었을까?
사실 동아시아는 예부터 여성 통치자의 역사적 전통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영태후는 6세기 초 섭정을 하였고, 10여 년이 넘게 정권을 장악했다. 그녀 이전에도 농경민족의 한인정권에서나 유목민족의 선비부족에서나 모두 여성이 집권한 사례가 있었다. 그녀 이후에는 심지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기세등등한 여성 황제가 등장했다. 한 당 시기 중국의 문화는 한국으로 전해졌고 그 후 일본에도 전해졌다. 그 가운데서도 ‘율령제’는 동아시아 사회 각 영역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는 규범적 역량으로서 작동했다. 여성 통치자는 그가 속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그 사회의 윤리규범을 인지하고, 제도적 속박을 넘어서며, 또한 ‘성별’의 함의를 가지는 통치를 하였을까? 중국의 중세 시기 여성 통치자는 ‘신정新政’을 통해 새로운 제국 질서를 만들기도 했고, ‘음양이 함께 다스린다(陰陽共治)’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으며, 혹은 폭력 남편들을 엄벌에 처하는 법령을 만들기도 했다. 동아시아 역사상 다른 여성 통치자의 정치에서도 그들과 비슷한 이념이나 행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통 사회에서 여성이 정치에 개입하거나 법의 집행 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반드시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라는 신분으로 가능했다. 황후로서 혹은 태후로서 ‘섭정’의 명분이 있어야지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들은 황실의 제위 계승에 약간의 빈틈이 생겼을 때 이를 메우는 과도기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기에 통치에 있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어려웠다. 오늘날 여성 통치자는 원칙적으로는 더 이상 혼인이나 가족으로 자기의 신분을 규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가족이나 이로 파생된 사회적 관계는 그녀에게 장애가 될까 아니면 도움이 될까. 21세기 여성 정치가는 궁정 정치에서의 외척 개입이나 환관의 간섭을 피할 수 있겠지만 각종 파벌과 이익단체들이 얽혀 있는 권력 관계 속에 놓여 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성별’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또 그들의 ‘여성’ 신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부족한 책이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을 넘어 더 큰 맥락에서 150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 학생에게 물었다. “여성대통령이니? 아니면 ‘여성주의’이니?” 만약 이 작은 책자로 인해 젊은 학생들이 동아시아 각국의 여성과 법률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호기심을 느끼고 이를 연구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현대적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일보다 훨씬 더 기쁜 일인지도 모른다.
리전더李貞德
2012년 성탄절 밤 타이베이 원저우지에溫州街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