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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이경준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4년 10월 <킹 크림슨>

이경준

록 비평가.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있었으며, 현재 대중음악 관련 번역자 ·작가로 활동한다.
『블러, 오아시스』·『딥 퍼플』·『주다스 프리스트』·『카펜터스』등의 전기를 썼고 데이비드 보위, 핑크 플로이드, 조니 미첼, 지미 헨드릭스, 브렛 앤더슨에 관한 책들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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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칠흑 같은 아침> - 2023년 2월  더보기

여기 아름다운 실패담이 있다 놀랍게도 이 책의 서문은 ‘실패의 기록’이라는 문구로 열린다. 실패. 반짝거리는 커리어를 보유한 뮤지션의 표현은 당혹스럽다. 자신의 업적이나 성취를 부각하려는 회고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댄다. 성공 스토리로 귀결된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고. 이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오며, 어떤 궤적을 그려 왔는지 본인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섣부르게 한 사람의 일생을 ‘신화’로 규정하거나 ‘승리자’로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건 우리의 오만이자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지. 페이지를 넘기면서 우리는 조금씩 브렛 앤더슨이라는 인물의 진실에 가까워지게 된다. 작가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그 누구보다 ‘미숙하고 위태로운 영혼’이었음을, 정념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청년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10대와 20대의 격한 파고를 넘어 본 모든 이들에게, 그의 고백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책 속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정 내 권력행사를 통해 존재감을 표출하고자 했던 아버지, 묵묵히 응원군을 자임했던 어머니, 일탈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한 친구들, 인력과 척력의 법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또 멀어져갔던 음악계 동료들. 브렛 앤더슨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숨결을 불어넣었고 두루 조명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균형감을 살려냈다. 이러한 서술은 글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효과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 뜨거운 연애가 있다. 브릿팝에 정통한 사람들이라면 친숙할 한 여인과 두 남자의 이야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되뇌곤 한다. 내가 하는 사랑은 불멸하며 퇴색되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그 시절의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브렛 앤더슨의 사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임스 설터의 말대로 “빛이 넘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나날”은 언젠가 종말을 고하게 되는 법이니. 뜨거웠던 에너지가 고갈되면, 애정은 종종 자기비하나 상대에 대한 증오로 뒤바뀐다. 모두가 안다. 그런 감정 통제에 능숙했던 자 과연 누구였을까? 작가 브렛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흉물스러운 낙엽더미에서 끄집어낸 가십 대하듯 저 악명 높은 일화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이 책은 삼류 일기로 전락하고 말았으리라. ‘마법과 스릴’이 퇴색한 막다른 골목에서, 브렛이 ‘연애의 추락’으로부터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직접 본문을 통해 확인해보면 된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로 물결을 일으키던『칠흑 같은 아침』은 스웨이드가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에 페이드아웃된다. 이후 신 내부에서 펼쳐지게 될 더 길고 긴 궁금하게 만들어 놓은 채로. 예고했던 바대로 이것은 ‘전사’이기 때문이다. 얼마 후 더 풍성한 볼륨을 가진 2부 『블라인드 쳐진 오후』(2019)가 공개되었는데, 후일담을 기다릴 수 없는 분이라면 이 책을 구해 읽으셔도 좋겠다. 아쉽게도 국내 발간은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번역을 하며 스웨이드의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Animal Nitrate〉, 〈Metal Mickey〉, 〈The Wild Ones〉, 〈New Generation〉 …. 그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던 1990년대 중후반을 분명히 기억한다. 정말이지 두려운 게 없었고 온종일 노래만 듣고 있어도 행복해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다. 솔직히 원서를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브렛 앤더슨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국내 독자들에게 영향력이 있을지 의심했다. 하지만 적어도 번역을 마친 지금, 이 글이 가진 밀도와 흡입력에 대해서는 살짝 알겠다. 브렛은 자신이 상정한 유일한 독자인 아들 루시안에게 언젠가 ‘유의미’할 수 있다면 족하다며, 소박하고 겸손한 소회를 밝힌 바 있는데, 그보다는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부디 저 아름다운 실패담이 그의 음악을 가슴 속에 간직한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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