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동부 버몬트 주의 우드스톡에서 태어나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한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법률은 물론 고전문학과 어학을 비롯한 인문학 분야와 응용과학 방면에서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여러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여 향후 정치외교가로 활동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1842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활동을 활발히 펼침으로써 정치가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당시 천연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구상하던 동료 의원 존 퀸시 애덤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두 번째 임기를 마친 뒤에는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으로부터 터키 공사로 임명을 받았다. 외교관으로 터키에 머무는 동안 마시는 중동과 지중해 연안의 지리와 농경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병행했다.
1854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마시는 컬럼비아 대학교와 보스턴 소재 로웰 협회에서 영어학과 영문학에 관해 강좌를 개설할 정도로 학자로서의 소양도 널리 인정받았다. 1861년에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이탈리아 공사로 임명을 받은 뒤 현지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직무를 수행했다. 자신의 경험과 재직 중 여러 국가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실상이 계기가 되어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인간의 행위로 인한 환경 변화와 파괴에 경종을 울려 큰 족적을 남겼다. 환경과 관련된 그의 핵심사상은 『낙타』 『관개』 등에 단편적으로 피력되다가 『인간과 자연』(1864)에서 종합되었다. 이로써 그는 환경보존운동의 선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