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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東方朔)자는 만천이고 평원(平原) 염차[厭次, 지금 산둥성(山東省) 양신현(陽信縣) 동남쪽에 해당되는 지역] 사람이다. 서한(西漢) 무제(武帝) 시기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지냈으며 걸출한 외모, 익살스러운 언변과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생존할 당시부터 이미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특히 동방삭의 해학과 말재주를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동방삭에 관련된 설화는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했다. 저술로 <답객난(答客難)>, <비유선생(非有先生)>, <봉태산(封泰山)>, <책화씨벽(責和氏璧)>, <황태자생매(皇太子生?)>, <병풍(屛風)>, <전상백주(殿上柏柱)>, <평락관부렵(平樂觀賦獵)>, <팔언칠언(八言七言)>, <종공손홍차거(從公孫弘借車)> 등이 있다. 이 외 ≪신이경≫과 ≪십주기(十洲記)≫ 등의 지괴소설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 가탁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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