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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양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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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우리가 들국화였을 때>

양학식

지리산 자락인 전라남도 구례에서 나고 자랐다.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순천매산고등학교 국어선생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시골의 작은 교회의 장로로 시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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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우리가 들국화였을 때> - 2024년 8월  더보기

나가는 말 먼저 감사의 인사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고라복이라 부르는 코잇선교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1910년대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 나라에 왔습니다. 그의 어린 두 아이와 크레인 선교사의 두 아이는 순천에서 풍토병을 얻어 한두 살의 나이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신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념과 아픔에 대해 생각하다가 저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래, 여러 이유로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렸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따가운 햇볕을 등에 지고 목화를 따던 흑인 노예들에 대한 감사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흘린 피땀은 고스란히 돈으로 바꾸어져 조선의 선교사들에게 전해졌고 지금 이 매산등과 조선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그 돈에 대해 조금만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틀림없이 흑인노예들의 건강이나 그들의 주린 배를 달래는 데 쓰여야 할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알렉스 헤일리와 함께 그들 쿤타킨테들의 삶과 희생에 깊은 위로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학교의 두 차례의 폐교에 대해서 기억하지만 이 교정에는 부인할 수 없는 친일의 흔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공과보다는 혹독했던 일제 강점기에 두 번이나 폐교를 하고서도 학교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선배들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부임 첫날 막연하게 1학년 5반 교실로 들어가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1989년 3월 2일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이내 수업과 행정의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성정이 거친 교사를 지도하고 지켜 주신 선배교사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리버리한 신임교사가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에서도 따뜻이 감싸주셨던 그분들은 대부분 세월을 따라 소천당하셨거나 순천에 안 계십니다. 네 번째는 욕심 많고 유독 고집 센 교사를 인내해준 학생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36년의 교직생활 중 첫해부터 34년간 쉼 없이 담임을 해왔습니다. 그 때 언어나 물리적인 면에서 강제성에 기반한 교육을 퍼붓던 교사가 ‘그 때는 그런 시대였으니 이해해 달라’는 시시한 말로 용서를 구하며 제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간 모아온 제 반의 모든 학생들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입니다. 요 근래 2년은 비담임을 해왔습니다. 늙어서 무력하기 보다는 담임을 하지 않으니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칠까봐 가능하면 바쁘게 살아가시는 선생님들께 노출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웃으며 살갑게 인사해 주시고 저희가 나이라는 한국적 폭력으로 빼앗은 시간을 구자명처럼 인내하며 배려해 주신 선생님들에게 참 감사합니다. 저는 9명의 지도자를 경험했습니다. 어떤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집에서 단감을 따서 야간 자습을 하던 교사들에게 나누어 주던 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유난히 말씀이 많아 교무실에 찾아와 아무나 잡고 한참을 수다를 떨던 분도 있었습니다. 운동을 유난히 좋아하여 친목대회를 활성화 시켰던 분도 있었고, 성격은 전제적이었지만 대범하게 문을 열어서 학교를 개방시키셨던 분, 도 교육청이 금지하여 시행하기 곤란한 일도 ‘교장인 내가 책임질 테니 교사와 학생들에게 유리한 일을 하라’던 분도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올 책임이 무서워서 작은 일도 회의를 부쳐 놓고, 형식은 회의이지만 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 버리는 분도 있었고, 교감에게 자신과 의견이 다른 교사의 수업에 들어가 감독하라며 복수를 하는 한심한 분도 있었습니다. 아부처럼 느껴지는 소리가 많으니 자주 와서 바른 말을 해달라더니 왜 잘못한 것만 말하느냐고 역정을 내는 어리둥절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되었든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저에게 행정처분 한 번 없이 정년하게 하였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여러분이 아시는 그 분이십니다. 오래 기도했으니 제가 얼마나 감사하는 줄 아실 겁니다. 1960년대 서울의 한 사립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은 신임교사를 처음 소개할 때, 그때는 드물었다는 자가용차로 신임교사를 태워서 직접 학교로 출근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운동장까지 와서 손수 차의 문을 열고 단상에 올려 소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교사들을 존중하고 배려했다는 것입니다. 그 학교가 서울 최고의 명문 사학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고 바울선생이 그토록 웅변해도 우리는 예수님이 목숨으로 지켜낸 사랑의 가치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실천은 못하면서 차마 말로만 사랑할 수 없어서 지금껏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며 살아 왔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가사 관동별곡에 보면 강원도 도지사 격인 작가는 관동지방의 절경을 백성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그 후에 신선과 함께 즐기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권력 있는 사람들은 구성원들이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것들을 자기가 차지하고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며 구성원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구성원들은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보다는 단소리를 하려하고 그렇게 길들여진 지도자는 초심을 잃어버린 분도 경험했습니다. 젊은 시절 일주일 중의 이틀은 야간자습, 이틀은 특별수업, 하루는 수요예배를 드리고 토요일도 한 달에 몇 번은 오후까지 자습지도를 하곤 했습니다. 밤 열시에 학교에 나와서 장학반 자율학습을 지도하고 11시 반에 퇴근한 몇 년도 있었습니다. 가정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지금의 교장선생님이 기도모임을 만들자고 해서 뭣 모르고 참여했습니다. 기도가 끝나니 저녁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고픈 배로 야간 자습지도를 한 것도 부지기수입니다. 간혹 컵라면 하나로 젊은 허기를 달래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가르칠 교재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보충교재와 논술교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시간도 청춘의 때였습니다. 젊은 시절은 어리둥절한 혼돈의 시절이었고 장년의 시절은 학생의 자유와 교사의 권위가 부딪히는 열정의 시간이었습니다. 원로교사가 된 이후는, 교장선생님이 기도의 동지이니 말이 통할 거라는 생각과, 젊은 분들을 위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사명감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크게 좌절한 기억이 우세합니다. 저의 노력이 여러분의 교육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교육의 자율성 개방성 민주성 다양성이 매우 후퇴한 듯한 교육현실 속에서 물러나게 되어 미안할 뿐입니다. 책을 한권 만들었습니다. 제가 교직 생활하면서 지어온 시와 소설을 실었고, 어설픈 한시와 서예 그리고 기왕 출판한 김에 제 추억과 삶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으며, 굶주림으로 죽음의 앞까지 가야했던 지독한 궁핍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납니다. 역사의 한 복판에서 5.18이라는 기막힌 역사의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며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서있던 기억도 또렷합니다. 교사가 된 후, 교지를 만들기 위해 매산 일대를 취재하면서 매산에 대해 설화와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이름이 박난봉 혹은 난봉산으로 불리는 매산은 매화가 핀 산이 아니라, 맹금류인 매가 떠서 날아다니던 산으로 ‘매산’이라고 말하는 몇몇의 노인들도 만났습니다. 조선의 문인 배숙이 매곡집을 지은 곳이 매곡동이므로 매화의 梅와 ‘매’의 음이 가차되어 버린 거라 추측합니다. 세대로는 586세대의 맏이지만 이 학교에서 제 친구를 비롯한 세분의 선생님이 해직당한 전교조마저 끝내 지키지 못했던 미안한 구세대가 오늘 물러납니다. 걸어서 출근하다가 신기 안동네 공원에서 늘 정끝수씨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늙은 발달장애인입니다. 나를 보면 늘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뒤뚱거리며 다가옵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출퇴근 시간에는 나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곧 은퇴해서 못 오는데 어떻게 하죠?” 라고 걱정했더니 주민들이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괜찮아요, 일주일이면 다 잊어 버리거든요.” 그러나 저는 언제쯤 그와 여러분 그리고 이 학교를 잊을 수 있을까요. 내일 아침 눈치 없이 잠이 일찍 깨지 않기를 바라며 퇴임 인사를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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