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는 에도시대의 화가, 다케하라 슈운센이 실체가 없는 요괴에 실체를 덧입힌 괴담집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설화들을 바탕으로 인간의 슬프고도 추한 본성을 다채롭게 해석해낸 시리즈다.
이번 특별판은 ‘알라딘×비채×교고쿠 나쓰히코’의 합작으로 서점과 출판사와 작가가 긴밀히 아이디어를 주고받은 끝에 평소 일본 전통 의상을 즐겨 입는 작가의 이미지를 오마주한 디자인으로 기획하여 단독 리커버 특별판으로 선보인다.
《항설백물어》로 서막을 여는 총 16편의 이야기는 《속항설백물어》《후항설백물어》(상)(하)로 이어지며 2000여 쪽에 걸친 대장정을 펼친다. 지루할 틈 없이 휘몰아치는 기담의 행렬을 함께하다 보면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체불명의 소리와 불가사의한 현상을 요괴의 짓으로 듣고 보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요괴보다 무서운 사악함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소설의 테마가 된 《회본백물어》는 인간의 추악한 마음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치밀한 추리로 괴이를 돌파하는 전개의 이면에는 통쾌함과 함께 한없이 약하고 악한 인간을 향한 연민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
고전 설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소재와 아름다운 묘사, 치밀하게 교차되는 에피소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집대성해 몰아치는 충격적 결말.
지금까지의 어떤 장르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작풍은 ‘교고쿠 나쓰히코표 문학’이라고 불리며 한 작가의 집념과 열정이 만들어낸 일본 문학사에 길이 남을 값진 성취로 자리매김해왔다.
옛날이라는 건.
좋은 옛날이든 나쁜 옛날이든, 어떤 옛날이든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법이다.
이는 분명 자신의 뱃속이나 가슴속이나 머릿속에만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옛날은 전부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된 현실이야말로 옛날이다.
- <후 항설백물어 하> 252쪽
예로부터 사람들이 입으로 전하는 무시무시한 일,
기이한 일을 모아 백 가지를 이야기하면 반드시 무시무시한 일,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백 가지 이야기에는 법식이 있다. 달빛 어두운 밤, 사방등에 불을 켜는데, 그 사방등에는 푸른 종이를 붙이고 백 가닥의 심지를 밝힌다.
이야기 하나에 심지를 한 가닥씩 뽑으면 좌중은 점점 어두워지고 푸른 종이 색깔이 변하면서 어쩐지 무서워진다.
그래도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반드시 기이한 일,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 <후 항설백물어 하> 241쪽
하늘의 일은 하늘에, 땅의 일은 땅에. 사람은 천지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다르지요.
사람의 이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과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 세상을 이루고 있지요.
비가 오면 땅이 젖습니다. 땅이 흔들리면 대기가 어지러워져 바람도 불겠지요.
섬에 사람이 산다면, 거기에 마을이 있다면, 사람이 사는 장소에는 사람의 이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 <후 항설백물어 상>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