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 51호
뭉그러진 복숭아의 달큰한 향처럼
첫 장편소설인 SF로 황금드래곤문학상을 수상한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의 예소연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된 소설은 '소설 보다'를 통해 독자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 프로젝트에 「사랑과 결함」, 「우리는 계절마다」, 「그 개와 혁명」 등 세 편의 소설이 선정되어 이미 이 작가의 소설집을 기다려온 분들도 계실 것으로 짐작합니다.
내 친구가 남자를 '밝히는' 나를 모욕한다면, 아빠가 위선적인 운동권 아저씨라면, 내 소꿉친구가 나에 대한 소외를 주도한 아이라면, 한때 너무도 사랑했던 친구가 내 돈을 떼어먹고 물 좋은 곳에 가서 유유자적 산다면,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 사랑과 그 사랑이 내포한 결함을 교차하며 질문을 던집니다. 시대정신은 '손절'이지만, 관계가 단절되어도 마음이 끝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저는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 패인 자리의 흠결은 흠결대로 놔두면서 예소연의 소설은 지긋지긋한, 우리가 사랑해온 귀한 것이 뭉그러진 자리의 달콤한 냄새와 끈적한 감각을 모두 소환합니다. 그리고 그 끈적함까지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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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소설인 SF로 황금드래곤문학상을 수상한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의 예소연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된 소설은 '소설 보다'를 통해 독자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 프로젝트에 「사랑과 결함」, 「우리는 계절마다」, 「그 개와 혁명」 등 세 편의 소설이 선정되어 이미 이 작가의 소설집을 기다려온 분들도 계실 것으로 짐작합니다.
내 친구가 남자를 '밝히는' 나를 모욕한다면, 아빠가 위선적인 운동권 아저씨라면, 내 소꿉친구가 나에 대한 소외를 주도한 아이라면, 한때 너무도 사랑했던 친구가 내 돈을 떼어먹고 물 좋은 곳에 가서 유유자적 산다면,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 사랑과 그 사랑이 내포한 결함을 교차하며 질문을 던집니다. 시대정신은 '손절'이지만, 관계가 단절되어도 마음이 끝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저는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 패인 자리의 흠결은 흠결대로 놔두면서 예소연의 소설은 지긋지긋한, 우리가 사랑해온 귀한 것이 뭉그러진 자리의 달콤한 냄새와 끈적한 감각을 모두 소환합니다. 그리고 그 끈적함까지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소설집 첫 수록작 <우리 철봉 하자>는 손수현, 송예은 주연의 <철봉하자 우리>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동시대적인 코미디를 관람하며 저도 상처난 채로 사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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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쪽 :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나는 나에게 사랑을 흠뻑 주는 고모를 흠뻑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도 순정 앞에서 절대로 엄마 편을 들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 시절의 나에게 사랑이란 그런 식으로 모종의 불안을 동반하며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무엇이었다.
Q :
『환희의 책』은 곤충들이 공저자로 두 인간의 사랑을 관찰하는 이야기입니다. 관찰당하는 존재인 곤충이 관찰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이 시선의 방향의 뒤짐힘 자체가 퀴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
그렇네요! 덧붙여 “퀴어적”이란 건 어떤 것인지 여러 사람이 모여 느슨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때론 낯설고, 때론 근사한 이야기 사이사이로 그간 말하지 못했던 각자의 ‘퀴어스러움’이 잠시라도 서로에게 스밀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 대화의 자리에 『환희의 책』의 저술가들인 곤충들도 함께할 겁니다. 성체가 된 뒤에도 계속 탈피를 지향하는 톡토기, 흡혈과 산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암모기, 한곳에 머무르며 육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거미까지. 각자 자기의 집단에서 남다르고 모난 존재들이죠. 그렇기에 세상 속에서 구르고 깨져야만 했던 자신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나의 시선으로 다른 존재의 퀴어스러움을 관찰하고,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 나의 퀴어스러움이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꼼꼼하게 탐구되면서, 그렇게 공저자로 서로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 세계가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는 모두 그 책의 한 꼭지를 도맡아 쓸 수 있는 저술가들이자 독특한 퀴어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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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환희의 책』은 곤충들이 공저자로 두 인간의 사랑을 관찰하는 이야기입니다. 관찰당하는 존재인 곤충이 관찰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이 시선의 방향의 뒤짐힘 자체가 퀴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
그렇네요! 덧붙여 “퀴어적”이란 건 어떤 것인지 여러 사람이 모여 느슨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때론 낯설고, 때론 근사한 이야기 사이사이로 그간 말하지 못했던 각자의 ‘퀴어스러움’이 잠시라도 서로에게 스밀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 대화의 자리에 『환희의 책』의 저술가들인 곤충들도 함께할 겁니다. 성체가 된 뒤에도 계속 탈피를 지향하는 톡토기, 흡혈과 산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암모기, 한곳에 머무르며 육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거미까지. 각자 자기의 집단에서 남다르고 모난 존재들이죠. 그렇기에 세상 속에서 구르고 깨져야만 했던 자신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나의 시선으로 다른 존재의 퀴어스러움을 관찰하고,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 나의 퀴어스러움이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꼼꼼하게 탐구되면서, 그렇게 공저자로 서로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 세계가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는 모두 그 책의 한 꼭지를 도맡아 쓸 수 있는 저술가들이자 독특한 퀴어들이 아닐까요.
Q :
여름은 곤충이 수난을 겪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유독 대단한 올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
태양이 사자자리에서 떠오르는 매해 8월이 되면 저는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기운을 북돋웠는데요. 올여름은 무슨 일인지 그 일인용 사자후가 잘 터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아, 슬프고 우울한 건 여름이나 겨울이나 때를 가리지 않고 울컥울컥 솟아나는구나, 그렇게 덤덤히 받아들이려 해요(아마도 그래서 저는 이런 내면과 정반대인 제목의 『환희의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지쳐서 침울해 있을 때면 저와 함께 사는 연인이 말합니다.
“식물들 좀 봐. 쟤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실제로 창밖에선 제가 봄부터 키운 잎채소들이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날마다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습니다. 물을 주려고 해 질 무렵에 밖으로 나가면, 그 잠깐 사이에 저는 모기들에게 쉴 새 없이 물어뜯기죠. 인간이란 존재는 야생에선 지독히도 연약하구나, 그렇게 또 제가 망각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알게 모르게 제가 얼마나 이 세상의 보호와 이해 속에서 살고 있는지 깨달아요.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Q :
피부가 닿는 감각, 훌쩍이며 우는 소리, 곤충이 튀어오르는 소리 등 읽다보면 감각적 묘사가 톡톡 튀어오릅니다. 이 소설에서 특히 이 단락의 감각을 눈여겨 봐주십사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단락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A :
소설 후반부에 ‘호랑’이 ‘버들’을 향해 다짐하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단락의 굳센 사랑이 올여름 독자분들에게도 깃들기를 바랍니다.
네가 봄 한 철의 나비처럼 이 꽃 저 꽃을 누비며 얇고 찢기기 쉬운 너의 날개를 파닥거려도, 설령 네가 그 꽃밭에서 누군가에게 붙잡혀 채집통에 갇힌대도, 나는 쇠꼬리처럼 그 통을 후려쳐 너를 구할 거야. 너의 가슴과 날개에 꽂힌 바늘들을 뽑아 내던질 거야. 네가 다시 꽃 사이를 누비며 팔랑거릴 수 있게. 왜냐하면 너는 단지 꽃들을 연결해주고 싶었던 거니까. 너에게만 보이는 마음의 방, 그 꿀의 길, 비록 나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네가 보고 듣는 요정의 느낌을 나는 사랑하니까. 네가 나를 열고 나에게 너를 비벼 날개를 갖게 해줬으니까.
(『환희의 책』, 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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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뿐인 휴일이라도 언제나 꿈은 큽니다. 공휴일을 맞이할 때 저는 대체로 책 오천 권을 읽겠다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데요, 그럴 때 손에 잡히는 건 고봉밥으로 글이 담긴 시리즈물입니다. 최근엔 뉴욕타임스(NYT) 선정 '21세기 100대 베스트 도서' 1위에 선정되기도 한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었고요(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시리즈는 전 4권인데요 숨이 차서 다음 권으로는 좀 쉬다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요번 공휴일엔 또 다른 시리즈물 박완서 작가의 <미망> 전 3권을 병렬독서 탑에 쌓아볼까 합니다.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 이후 분단에 이르기까지 개성의 한 중인 출신 상인 전처만 집안의 일대기를 다루는 이 소설은 소녀 박완서가 잃어버린 땅, 개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 투철한 교육열을 지녔던 작가의 어머니는 개성을 떠나 서울에 자리잡고 '엄마의 말뚝' 시대로 박완서를 인도하지요. “내 작품 중 혹시 오십 년이나 백 년 후에도 읽힐 게 있다면 『미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라는 작가의 목소리에 응답하며 소설로나마 대 작가가 잊지 못한 역사적인 도시를 여행할까 합니다.
밤바다를 조심하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사방이 깜깜한 밤, 바닷가에 앉아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보면 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물속에 반쯤 잠겨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 왜 물속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건지 그 사연이 궁금해지지 않으신가요? 죽은 영혼을 바라보는 정지혜 작가의 세심한 시선을 담아낸 연작소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감상적이고도 서정적인 호러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해안선 곳곳이 바위와 절벽으로 절경을 이루는 경이로운 섬 ‘목야’, 이곳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 잔잔해 보이지만 거센 파도를 품고 있는 바다를 닮은 세 편의 이야기. 「지은의 방」, 「강과 구슬」, 「이설의 목야」는 각각의 다른 매력으로 쉴 틈 없이 장을 넘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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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를 조심하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사방이 깜깜한 밤, 바닷가에 앉아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보면 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물속에 반쯤 잠겨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 왜 물속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건지 그 사연이 궁금해지지 않으신가요? 죽은 영혼을 바라보는 정지혜 작가의 세심한 시선을 담아낸 연작소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감상적이고도 서정적인 호러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해안선 곳곳이 바위와 절벽으로 절경을 이루는 경이로운 섬 ‘목야’, 이곳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 잔잔해 보이지만 거센 파도를 품고 있는 바다를 닮은 세 편의 이야기. 「지은의 방」, 「강과 구슬」, 「이설의 목야」는 각각의 다른 매력으로 쉴 틈 없이 장을 넘기게 합니다.
강령술로 귀신을 불러내 그것과 하나가 된 지은, 강이가 목격한 수사귀의 비밀, 목야에 아픈 상처가 있는 은위와 이설의 이야기를 통해 목적 없이 내민 손길과 향하는 마음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 알게 될 것입니다. 작가가 숨겨둔 퍼즐 조각을 찾아 능동적으로 맞춰가며 이야기 속 힌트를 찾아 읽는 재미와 기쁨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 출판사 자이언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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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드리는 오늘은 8월 14일 말복입니다. 좀처럼 더위가 가실줄 모르는 여름의 끝자락에 (세 달 뒤면 추워추워 하고 있겠지만요 ^^) 여름꽃을 제목에 심은 책이 찾아왔습니다.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2012), 에세이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2021)로 식물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문학으로 옮기기도 한 이승희 시인의 신작입니다. '식물은 식물의 몫을, 사람은 사람의 몫을'(120쪽, 해설) 견디는 이야기로 차분하게 올 여름의 끝을 바라봅니다.
제7회 김종삼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김경미 시인의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도 흐르는 물과 작약의 이미지로 여는 시집입니다. '나는 잘나지 못했지만 혼자 잘났습니다'(<약속이라면>)라고 말하는 시의 화자는 풍파가 지나간 자리에서 홀로 유유자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