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와 버섯과 나희덕과 시"
나희덕 시집. 첫 시집 <뿌리에게>(1999)에서 <가능주의자>(2021)로 이어지는 작품세계 속에서 그는 '식물적 상상력'으로 세계의 구체적인 고통을 직시해왔다. '한 편의 시가 /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시와 물질> 부분)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라고 말한 가능주의자는 시의 말로 세계를 구성한 물질들을 호명한다. 그것들은 거미불가사리, 닭, 지렁이, 버섯. 혹은 파리 팡테옹 광장에서 녹아가는 빙하 조각과 미세 플라스틱을 삼키고 창백해진 산호초다. 혹은 샌드위치 소스 교반기에서 사망한 노동자, 한때 5.16광장이었던 여의도 광장을 지킨 어린 얼굴이다.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온기는 될 수 있다. 경찰이 건넨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핫팩' 같은 가능성이 세계의 물질을 향해 뻗어간다. 마음이 절절 끓어오르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더 많은 물질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나아가고 싶은 시가 4장에 걸쳐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발 플럼우드의 <악어의 눈>,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 같은, 시가 인용한 개념들과 함께 함께 알 수 없는 숲으로 나아가고 싶다. 책과 책, 시와 시, 품격과 품격, 물질과 물질로 만날 수 있는 세계를 꿈꾸고 싶다.
포자는 분명하게 정의하기 힘들다. 그것이 포자의 품격이다. (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 404쪽)
포자 터지는 소리가 폭죽처럼 들리는 숲으로 (나희덕, <세계 끝의 버섯>, 97쪽)
- 시 MD 김효선 (2025.04.08)